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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고려거란전쟁 등장인물 2탄, 현종

by 너도살구나도살구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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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강감찬에 이어 고려의 세종이라 불리는 고려의  8대 왕 현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KBS2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묘호: 현종(顯宗)
출생 : 992년 8월 1일
사망 : 1031년 6월 16일
(향년 38세)

 

 

 

현종-불행한 어린시절

현종 왕순은 태어날 때부터 불행했습니다. 가계도가 굉장히 복잡한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아버지는 왕건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왕건의 손녀였습니다. 결국 어머니인 헌정왕후가 그녀의 숙부인 왕욱과 결혼의 과정 없이 불륜관계를 맺어 태어난 자식이 바로 현종이었기 때문에 현종의 존재를 알게 된 당시 사람들은 이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태조 왕건의 후손이었으니 고귀한 혈통임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조정은 사생아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해하거나 내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고려 왕실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왕욱과 그의 어머니 헌정왕후는 경상도 사천으로 유배되었고, 헌정왕후는 처벌받을 예정이었으나 현종을 낳자마자 생을 산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현종은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한 사생아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모습을 딱하기 어긴 당시 왕 성종은 어린 현종을 거두어 유모를 붙여서 가까이에서 키웁니다. 그런데 당시 유모는 유아인 현종에게 아버지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가르쳤고, 어느 날 성종의 무릎에 앉은 두 살짜리 현종은 "아버지~ 아버지"라며 성종에게 매달렸습니다.
이를 본 성종은 어린 현종이 너무 불쌍해 눈물을 흘리며, 이 어린것이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겠며 현종을 사천으로 보내 왕욱과 현종의 극적인 재회를 허락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함께 잘 살 것 같던 헌종은 불과 3년 만에 아버지를 잃고 개경으로 돌아갔습니다.

성종은 다시 그를 불쌍히 여기고 어린 현종을 맞이하지만, 같은 해 성종마저 세상을 떠나고, 목종이 고려의 7대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당시 목종의 특이한 점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동성애자 왕이라는 점입니다. 목종은 '유행간'이라는 남자를 비롯해 예쁜 남자들을 무척이나 아끼며 그들과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의 후견인인 성종이 사망한 후 어린 현종은 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머니의 누이인 천추태후도 김치양이라는 가짜 승려와의 사이에 또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아들인 목종보다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더 아꼈기 때문에 김치양의 아이로 왕위를 계승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추왕후와 김치양은 태조 왕건의 계보인 현종이 차기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당시 12세였던 현종을 삭발하여 서울 북한산 자락의 작은 암자인 신혈사로 강제로 보내버립니다. 게다가 독이 든 음식을 여러 개 보내어 현정을 죽이려고 했으나 잘 안되자 자객을 여러 번이나 보내는 집요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신혈사에 있는 진관이라는 스님이 어린 현종을 보호했습니다.
 진관은 천추태후가 보내준 음식을 까마귀와 참새에게 먹이고 모두 죽는 것을 보고 음식을 내다 버리고, 자객이 왔을 때는 현종을 불상 밑에 미리 파놓은 굴 속에 숨겨놓고는 나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 며 알아서 찾아보라고 하고는 자기 할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진관스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현종은 후에 왕이 되어 신혈사의 이름을 진관사로 고치고 절을 확장, 중건하고 많은 재물을 하사합니다.

 

 

강조의 정변

한편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왕인 목종마저 허수아비로 만들어 국정을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김치양은 여러 고위 관직을 겸임하고, 나라의 일을 마음대로 처리했으며,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300여 칸이 넘는 호화 저택에서 대놓고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심지어 김치양의 자식이 다음 왕위를 계승하려고 하니, 허수아비 왕인 목종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종은 충직한 신하라고 생각했던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에게 몰래 편지를 써서 개경에 와서 자신을 살리고 김치양과 천추태후를 몰아내라고 합니다.

명령을 전달받은 강조는 곧바로 수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향하는데, 개경을 지키는 수비대마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강조의 군대에 합류했고, 김치양과 천추태후는 순식간에 체포됐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강조는 목종의 명을 받고 개경에 와서 사태를 정상화하고 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김치양을 죽이고 천추왕후를 귀양 보내게 되는데, 느닷없이 목종마저 폐위시키고 목종의 남자친구인 ’유행간‘까지 죽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추태후의 귀양길에 목종을 같이 보내더니, 귀양 가는 길목에 자객을 보내 목종을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유명한 ’강조의 정변’입니다.

그러고 나서 강조는 명분을 세우기 위해 신혈사에 있던 현종을 불러들여 왕으로 세우는데, 물론 지금은 강조의 허수아비였지만 자신을 암살하려는 자객들로부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나 일단 왕이 되었습니다.

이 강조의 정변은 호시탐탐 고려를 노리고 있던 거란에게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거란 황제(성종)는 친히 40만 대군을 이끌고 곧바로 고려로 쳐들어왔습니다. 이에 고려의 실세 강조는 전국에서 30만 대군을 모아 지금의 평안북도 통주성으로 가서 거란과 싸웠습니다.

하지만 거짓 후퇴를 반복하는 거란의 전형적인 전술에 속아 넘어가게 되어 강조는 방심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강조는 전투 중에 막사에서 장기를 두며 여유를 부리다가 순식간에 중앙을 뚫은 거란군 기병들에게 붙잡혀 많은 지휘관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고려군은 야전군의 대부분을 잃고 거란군을 막지 못했고, 연이어 거란군은 개경으로 밀쳐왔습니다. 당시 개경에는 성벽이나 방어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현종은 남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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